Review BOOK/소설2014. 8. 19. 10:10


라파엘 사바티니의 '스카라무슈'를 며칠 전 다 읽었다.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다. 재주껏 구해서 보셔야 함.) 책 두께는 어마무시할 정도지만 일단 읽기시작하면 이 두께를 의식하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장이 마구 넘어가서 이윽고 정신차려보면 반절이 후딱 지나가버린다. 사실 두께가 두꺼운 책들의 대개는 별 내용 아닌 것들이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그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해서 꼭 알아야만 하는 것들도 아니어서 사실상 생략해도 무방한 경우도 있다.  별개로 스카라무슈 같은 경우엔 쓸데없는 내용때문에 두터워진건 아닌듯 싶고, 워낙 주인공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때문에 상황을 바꿔가며 활극 나열을 하다보니 책 두께는 어쩔수 없는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두께가 별 문제가 안되는 이유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협지'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우리가 무협지를 읽을 때 그 엄청난 분량의 활자를 감내하는이유는 바로 가벼운 문체와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와 어떤 걸 탐구할만한 사유의 늪에 깊이 빠져들 필요가 없어서다. 굉장한 에너지의 소모가 없이도 술술 읽히는 활극모험소설이라면 분량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럽판 무협지를 방불케하는 이 '스카라무슈'에는 통속적으로 국내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우여곡절과 꼬이는 인연과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이 엄청난 속도로 전개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 역사적 격랑으로 빨려들어가게 되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반하는 어떤 상황을 만나면서 생각과 마음도 변화를 일으키며 주위의 인물들로부터 부단한 부대낌을 겪고 위험에 휩쌓이고 기어코 복수의 길을 가게 되는 식이다. 주인공의 마음가짐이라든가 어떤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이 소설의 배경에서 그 조짐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전야. 


만약에 스카라무슈가 어떤 권선징악의 단순구도만을 추구했다면 앙드레 루이가 그저 복수와 검객과 정치코미디의 수사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버릴 수는 없다. 거기에는 일단의 역사가 흐르고 있고, 이야기를 지탱해주는 커다란 함의가 깔려있으니까. 사실 귀족, 민중충돌과 프랑스혁명사에 격동기에는 우여곡절이라는 운명의 실타래를 배경으로 로맨스와 모험을 찔러넣는 소설들이 꽤 있어왔다. 인생의 소용돌이란건 그곳에 자신이 빠지지 않은 채 경험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니까..사바티니의 이 소설은 독자들의 이런 대리만족을 이해한다는 듯이 적재적소에 활극을 심어주었다. 지면을 휙휙 뒤로 넘기고 앞으로 전속력 질주를 감행하게 되는건 어쩌면 사바티니가 노린 코스식 요리가 아니었을까. 준비들 되셨나요 이제 막 전채요리가 끝났을 뿐인걸요 메인디시는 아직이랍니다 라고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앙드레 루이의 파란만장함을 뒤늦게 돌아보자면 사실 몇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어도 수긍했을 것이다. 1부 변호사와 복수심, 2부 배우 스카라무슈로의 변신, 3부 검의 마스터, 루이 돌아오다, 4부 소용돌이치는 인연과 운명의 늪..뭐 이런식으로 그럴듯한 제목으로 4부작 시리즈로 적당히 폰트를 키우고 적절한 삽화와 각권의 표지와..등등 이렇게 상업적인 고려를 감안해서 출간이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이 들곤 한다. 팔릴지 안팔리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은 중간중간 끊어도 될만큼 각 스토리사이의 분절이 탁월히 칸막이 쳐져있어서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걸요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주인공 루이는 사랑하는 알린을 다쥐르 후작에게 내주고 처절히 몰락해가며 찌질한 인생을 살게 될거예요. 그러다가 다시 복수의 칼을 들게 되죠. 다음 이야기는 제2권에서...뭐 이런식으로 독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본다면 그럭저럭 분절 출간되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의그는 변호사에서 광대로, 광대에서 검객으로..그리고 혁명가였다가 운명의 장난에 의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내야하는 전형적인 불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개의 경우, 서사적인 흐름에서는 앙드레 일대기로 묘사되었어도 굉장한 분량의 역사드라마처럼 전개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활극와 로맨스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가 거리가 있었다. 알린과 앙드레 루이와 다쥐르 후작. 세명을 뒤로한 역사의 혼란기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종횡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가 있었어야 한다고 혹자는 이야기하지만, 그건 이 소설을 너무 진지하게 보는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개의 독자는 루이가 알린의 시선을 알아채리고 다쥐르에게 복수할 줄 알며, 불운과 불공평, 불평등의 세상을 헤쳐나가며 먼치킨처럼 우뚝서길 원할 것이다. 거기에는 역사적 깨달음이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사바티니가 독자들에게 프랑스 정치사에 있어서 앙드레 루이가 서있는 위치의 타당성과 상징성을 논하려고 지면을 할애하는 순간, 이 소설은 무지하게 따분하게 되었을 것이다. 대중 통속 소설로 시작해서 갑자기 독자들을 가르치려들면 할수록 우원래의 목적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자고로 소설은 흡인력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는 '재미'란 요소가 빠질 수가 없다. 스카라무슈의 미덕은 바로 이 전형적인 '재미'이 있어서 앙드레 루이가 역사의 굴레속에서 부침을 겪다가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 이 모든 걸 이겨내고 복수하고 사랑을 쟁취하며 구조적인 사회의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일당백'의 모습을 독자들도 원하게 된다. 만약에 루이가 마지막에서 혁명의 전제조건으로 개인의 행복과 사랑을 포기하고 유치찬란하게 정치계로 진출하고 동지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국왕을 페위시키고 시민봉기를 주도하러 앞장서면서 끝을 맺었다면 이 뜬금 마무리에 다들 실소를 금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번갈아 연습하는 아르투로 페레즈의 '검의 대가'쪽이 그런 분위기에 가깝다. 사바티니의 '스카라무슈'는 완전히 재미가 보장되는 대중소설이다. 아쉬운 것은 '스카라무슈'외 '캡틴 블러드'같은 작품들이 완역본으로 출간되지 못했다는 점이고 나온 책이라고해봐야 아이들이나 보는 해적 모험 소설처럼 격하된 점이 못마땅스럽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