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3. 7. 25. 23:10


다른 소설을 읽는 기간에 비해선 오롯이 줄기차게 읽어댄 덕에 굉장히 빨리 끝장까지 넘겼다. 천천히 매일매일 분량대로 꾸준히 읽으려고 했는데 의외로 스토리가 지루하지 않게 읽히기도 했고 각 에피소드의 이음새가 산뜻해서 끊어서 쉬엄쉬엄가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더 좋았드랬다. 아무튼 호흡으로 보자면 이렇게 읽힌다는 건 재미있다라는 것외에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인 것이다. 


이전에도 몇번 짧게 언급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정체성과 핵심을 단 한줄로 요약하라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술계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정도만 이야기해도 독자들은 대충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기 어렵지 않을텐데, 특이한 점은 엔딩의 뉘앙스가 이질적이라는 점과 이 책의 저자가 스티브 마틴('헐리웃의 배우로도 알려져있는..'신부의 아버지'였던가..코미디쪽으로 알려져있지 않나 싶다.) 이라는 정도? 그리고 이와 더불어 스티브마틴의 소양이 전문가 수준에 육박해있고 그걸 제대로 묘사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하나만 공부만 잘해도 우와 하는데 갑자기 예체능도 잘해버리면 슬슬 경이와 찬탄의 대상으로 보이게 되고 그런 점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하면 읽는 태도가 갑자기 진지해져서 급평가모드로 돌변하는...(얼마나 잘 쓰는지 한번 보자구라고 혼자 되뇌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적인 부분은 미술계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자세하고도 일일히 묘사해 준다는 것이겠지만, 작가가 은근슬쩍 보여주는 미술계와 관련한 세속적인 느낌들의 정체,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한자리에서 관찰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통찰력 같은 가치관 같은 것에서 더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초반부에서 이미 스티브 마틴은 주인공 레이시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한 미래적 암시를 흘려놓았드랬다. 그러니까 흥미진진한 전개에 대한 주인공의 특별한 마음가짐이라던가 어떤 변화와 계기에 대한 반전이 느닷없이 등장하지 않을 거라는 점, 그리고  일관된 타락과 유혹의 길목위에서 이미 레이시가 자기의 운명을 행동으로 가늠케 해준다. 읽는내내 우와 이게 뭐야하는 충격은 사실 없었던 것 같다. 


"레이시가 소더비에 자리잡아가는 과정은 잔잔한 배경에 은근히 도드라지는 사악한 디테일이 되는 과정이었다 " (p37)


"수집가가 그림을 쫓는 과정이 표면상으로는 낭만적 구애과정처럼 보이지만 , 그 뿌리에는 시퍼런 욕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레이시는 욕정을 이용하면 남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레이시는 이 원칙이 아트 비즈니스에도 적용될 거라고 생각했다 (p55) 


이 즈음되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눈치빠른 독자들은 감을 잡는다. 아..우리의 레이시가 이렇게 가는 구나. 드디어 본격적인 음모와 모험의 세계, 그리고 치열한 돈과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 맨해튼의 갤러리를 쏘다니고 그러다가 자신의 정체성과 본연의 순수함을 잃게 되고 뜻하지 않는 사건과 그리고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곤혹을 치루겠구나라고..그리고 여지없이 그 예감은 헐리웃 영화의 플롯처럼 ...별 오차없이 들어맞는다. 어차피 이 책에서 많은 독자들은 갑자기 레이시가 욕조에서 샤워를 하는데 커튼이 젖혀지면서 스크림 가면을 쓴 괴한이 달려드는 스릴러를 원한 것도 아닐테고 자기 집 한복판 앤디워홀의 '오렌지 마돈나' 밑에서 자신의 애인인 파트리스 클레르가 피를 흘린채 얼음송곳에 찔려 죽어있는 추리이야기를 기대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적게다나 소더비 경매에서 돌아가는 세상사람들이 생각치도 못했던 이면의 은밀하고도 소소한 에피소드정도만 되도 호기심이란 물에 번진 잉크처럼 서서히 독자들의 읽는 몰입도의 컬러를 진하게 만들어줄테니까...


오히려 책 중간에서 의외의 작가의 소양을 가늠하게 되는 문장을 만나게 되는데 오히려 그런게 더 기억에 남는다는 건 이 책이 마냥 스토리에 천착한 에피소드 모음집이 아니란걸 알게 해준다. 레이시가 그림배달을 하는 도중에 그림에 대한 다윈의 진화론적인 해석을 우연찮게 만난 남자에게서 듣게 되는데 그 인물이 또 '존 업다이크'다. 실제 존 업다이크가 어디선가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다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만큼의 의외성이 있어서 환기가 된다고나할까. 


"그림도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는 겁니다. 두꺼비의 눈이 입체적인 시각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그림은 돈을 향해 움직여요. 사람들의 탐심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명작이라도 지하실이나 쓰레기장에서 썩을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필효한 존재로 만드는 거죠" (p82) 


게다가 현대미술의 난해함과 젠체하는 현학적인 해석등을 신랄하게 비꼬는 견해도 슬쩍 등장한다. 개념미술에 대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미술로 읽히는 이런 것들은 학리적이고 이론적인 미사여구로 치장하지만 결국 1960년대 시작된 '아이러니 미술'의 답습일뿐이라고..일반사람들이 느끼는 묘한 괴리감의 적확한 정체를 전문가적 식견에서 얻게 될줄이야. 그러니까 결국 예술가들이나 일반대중이나 모두가 느끼고 있는 모호함은 같은 것이었나보다. 무식함이 탄로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애쓰는 딜러들의 애환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튼 이 과정에서 레이시는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면서 스스로의 생존길을 찾는다 싶었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그리고 인생의 '블랙스완' 같은 의외성에 따라 댓가를 치룬다. 물론 여기서 많은 독자들이 현실의 잘나가는 인물들은 이런 행위적 인과에 대한 처절한 '인생학습'같은 걸 안하게 된다고 말할수 도 있겠지만 레이시의 입장에서는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그녀의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야할 엔딩이 되고 있다.  서글프지만 애닯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라도 마찬가지였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어버렸다. 차라리 레이시는 당차고 매력이라도 있었는데 뭐 나같은 범인의 말로는 더 비참하지 않았을까. 의외였던건 진정한 메릴스트립의 빙의버전이라고 생각했던 바튼탤리가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면서 레이시의 행적을 정리해줬다는게 놀랍다. 더 세속적일 줄 알았는데...그는 차라리 명인의 범주에서 스스로를 추스리는 현자였을수도 있겠단 생각이..갑자기 든다. 


"아트 비즈니스에 뛰어들면 말이야. 불법적인 지름길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돼.......(중간생략) 그러다 어느날 갈림길에서 서서 내가 어떤 종류의 딜러가 될 지 결정할 때가 오지...똑바로 가는게 훨씬 수월하다는 걸 깨달았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뭘했든 잘 끝냈기를 바라네 " p446


레이시가 연옥으로 쫓겨났다지만 그게 오히려 천국일수도 있겠다. 파크스가 은근 슬쩍 이렇게 말했지 않은가. 땅은 현실을 묘사하고 달빛은 꿈과 생각을 표현했고, 물에 비친 달빛은 예술을 표현한 것 같다고..그건 꿈과 현실사이에 있으니까..라고.. 레이시가 꿈과 현실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뉴욕을 전전하는 동안 독자들은 슬쩍 슬쩍 본인의 속된 욕망과 야망같은 것에 대한 기시감을 느끼지나 않았을까. 모험을 못해서였을 뿐이지..매력이 레이시만큼 없어서 그런게지. 어쩌면 더하고도 질펀한 진하디 진한 소더비의 음모속에서 서서히 침몰해갔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레이시 이야기

저자
스티브 마틴 지음
출판사
홍시 | 2013-05-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화려한 미술시장에 뛰어든 여성 아트 딜러의 이야기!뉴욕 미술시장...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