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철학-사상2013. 9. 6. 22:41


간혹, 아주 두터운 두께의 고전이나 오랜 문학소설,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문학들을 접하게 될 때, 테크놀로지적인 습득장치가 마련되어서 코인을 넣고 머리에 뭔가를 연결하고 '스팍'하고 번쩍이면 머리의 기억장소에 정확하게 내용과 핵심들이 저장되면 정말 편할거야라고 황당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키아누 리브스가 코드명 J에서 비슷한 걸 했었지싶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 싶지만 그만큼 세월을 감내한 마스터 피스 일수록 왠지 모를 거대 지루함은 견디기 힘들고,  암연과도 같은 혼란의 미로속에서 헤맬 만큼의 얕은 이해력을 생각하면 상상이라도 이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왜 그렇게 책 읽기가 어려운 건지.... 술술 읽히고 머리속에서 갈갈히 용해되고 지독히도 다양한 문장의 치즈들이 덕지덕지 발려져 꾸역꾸역 뇌로 들어오면 이를 재빨리 녹여줄 콜라같은 '이해력'이 있었으면 하는데 하지만 그런게 있을 턱이 있나 세상은  출중한 독서가를 많이 등장시켰어도 절대로 '훌륭한 독서가'가 되는 기발한 방법같은 건 알려주지 않는 법이다. 이게 다 진득히 뭔가를 읽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서일 수도 있고 뭔가를 진득히 읽고 생각하기를 세상이 원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책 다이제스트도 생겨났다고 믿는다. 책 내용을 친절히 풀어서 설명해주고 핵심이 뭔지도 가르쳐주고 개인적인 평도 덧붙여주고 그러면서 그 험난한 '독서생활'이 없을지라도 유사 그럴듯한 독서가 행세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편한 세상인 것이다.  


이런게 다 나쁘다는건 아니다. 솔직히 언제 읽을 지 알수도 없는 수없이 많은 고전들과 듣도 보지 못한 소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나오게 되면 여기서 뭘 골라낸다는 것 자체가 노동이다. 이렇게되면 읽는 능력외에도 '골라잡는' 능력도 필요하게 되고  골라잡으려면 '모니터링'을 잘해야 하고 이 모든 걸 다 감안하면 거대한 시간 놀음 속에서 점점 침몰되어가는 자신을 볼 수도 있다. 어떻게든 좋은 책을 골라는 잡아야겠지만 이런 걸 누가 가르쳐줄까..그리하여 책을 읽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을 다시 골라잡게 된다. 아마도 MD추천이니 하는걸 믿고 책을 잡았다가 지적허세질에 당했다고 부르르 떨면서 책을 놓아버렸던 경험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건 알려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런 책을 내게 되면 적어도 그 책 속에서 언급했던 비평과 이야기들에 신뢰감을 가지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서평도 그렇고 책읽기에 대한 책들도 그렇고 교습적인 강요투의 문장만 무더기로 반복되지 않는다면 해가 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다들 참고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고 개인적인 취사선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을테니까 책을 읽는 시점에서는 아 그래 이 책이 그런 책이야 한번 고려해보도록하지 라고 스스로 모종의 체크만 해둘 뿐이다. 나중에 한번 그 책에 대한 저자의 평을 떠올리며 슬쩍 몇장 넘겨보다보면 책의 저자가 말한 뉘앙스가 맞는지 어떤지 알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저자가 책을 읽고 감회를 밝혔던 그 책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정도면 훌륭하다. 그런데 여기에 몇가지 더 보너스로 추가한다면 이런게 있다. 



닉 혼비


책에 대한 평을 쓰면서 자기만의 스타일과 격조있는 문장과 그럴듯한 비유와 기발한 표현들을 버무려서 독자가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마치 이제 막 읽은 것처럼 감정을 전달해줄 때, 옆에서 친한 친구가 어제 읽었던 책 이야기를 도란도란 이야기해주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리고 자꾸 이 친구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거다.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까 오늘은 또 어떤 책을 읽고 유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번뜩이는 재기와 신랄한 지적질과 솔직한 표현들을 기대하며 기대한다. 그렇게 즐거움을 가지고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것. 그 속에서 저자의 아이덴티티까지 덤으로 획득되어지면 단순히 책정보를 전달해주는 것 이상의 에세이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책이 바로 이 <런던 스타일 책읽기>다.  


물론 알베르토 망구엘 할아버지가 이걸 봤으면 이런 허접한 독자들을 봤나. 내가 그랬지 않나 책을 읽을때 낱낱히 문장을 해부하고 그 이면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완전한 번역가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어라고 신랄하게 뭐라고 하시겠지만 설사 그렇다고해도 우리는 책에 대해 대작해주는 작가를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는 나보다 더 지적우위에 있고 사리를 분별할줄 알고 가치기준의 명확함과 대중들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이 어느정도 인정되어있으니까..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닉혼비의 소설을 읽었을 이유가 없고 이 책을 굳이 들고 닉혼비 특유의 재치를 읽으며 미소를 지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닉은 책에 대해 훌륭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는 '돈을 받지 않았어도 했을일, 즉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쓴 글에 대해서 돈을 받을 셈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했고, '우리는 스스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읽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고 짐짓 아픈 곳을 찌른다. 그렇다. 이런 허세질이 없으면 우리가 괜히 뜬금없이 날도 더운데 혹은 스산해질때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이해도 안가는 고리타분한 고전문학을 집어들겠는가. 스스로를 속이는 또 하나의 기묘한 지적놀이로 독서를 택해도 개멋 부린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다만 닉혼비의 이 글을 접하게 되면 등짝을 손바닥으로 짝하고 맞은 기분일 거다. 


그런 재미없는 책을 읽으면 지루해지고, 지루해지면 성격이 더러워지고 그렇게 되지 않기란 너무 쉬운 방법, 재밌는 책을 찾아서 읽으시라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그리고 솔직한 권유야말로 가식없는 '독서가'로서 진솔한 모습이 아닌가. 닉혼비여서가 아니라 어느누구라도 이렇게 말해줬어야하는데 다들 청소년 권장도서 100선이니 뭐니 하는 항목에다가 읽기도 싫은 무지막지한 목록을 나열해주면 어떡하란 말인가. 이런걸 접하면 개인적으론 다들 독서의 적들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더 읽고 더 배우신 양반들이 추천해주는 책이란 것들이 지나칠 정도의 개인적이라는 건 뭔가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 결국 닉이 말한 '책은 어려워야 하고 어렵지 않으면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그런 분들 뿐인거다. 


사방팔방에서 이런 공격들로 버티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닉혼비가 종횡무진 펼치는 쾌도난마를 구경하면 된다. 정치인 전기따위를 읽으면서 하품하지 않고 좀 더티하지만 3류소설을 읽으면서도 피식 피식 웃는게 더 유익하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문장을 통해 드러난다.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의 대개는 국내에 출판되지도 않은 듣도보지 못한 책들도 부지기수지만 그 책들이 가지는 진정한 요약본을 바란건 아니었으니 애초에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떤 책에는 기막힌 칭찬을 ...그리고 어떤 책은 도저히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책제목도 표기할 수 없다고 솔직히 써주었을 땐, 닉 혼비는 믿어도 된다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런던스타일 책읽기>의 서평스타일을 본받으려는 MD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화려한 책편력의 이면에서 미친듯이 읽어야 하고 미친듯이 책을 구매해야하는  필수부가결한 삶이 따라붙어야만 가능하다고 느낄즈음 , 닉혼비의 이 책이 시리즈로 나와줬으면 어떨까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VOL.1 VOL.2 이런식으로..정말 재밌지 않을까. 수없이 쌓인 책더미에서...무한히 반복되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책장의 한칸씩을 먹어치우는 신출귀몰한 책벌레를 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저자
닉 혼비 지음
출판사
청어람미디어 | 2009-05-1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19세기 찰스 디킨스, 체호프의 고전부터 21세기의 최신소설,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