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3. 2. 27. 18:17

<고독한 시월의 밤>(A Night in the lonesome october) - 로저 젤라즈니/시공사.

 

 

아주 고전적인 무협소설 매니아의 전력(?)이 있었던지라 대여점이나 서점의 미로같은 구획들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코너가 바로 무협소설코너다. (대놓고 무협코너라고 타이틀을 걸어놓진 않지만..) 그리고 요즘의 그 코너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예전' 고풍스러웠던 화산과 전진, 곤륜, 소림의 이야기들이 아닌 다중차원을 오고가는 그야말로 판타지계열의 어드벤쳐로 퓨전된 괴이한 장르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이게 무슨 무협이야..그냥 SF라고 해두지' 라는 정도..SF혹은 판타지가 무협과 접목되었다고해서 나쁘다고 말할순 없지만, 내 추억의 레이아웃들은 SF, 판타지, 무협의 칸막이가 확고하다. 두방을 터는 경우(?)도 없는데다가 둘은 각자의 매력적인 정서와 뉘앙스로 개성화되어있다고 믿기에 엄연히 독립적이었던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완연히 '정통무협물'이 아닌 '무협 판타지'로 전이된 양상이다. 판타지의 유입으로 보자면 시대의 흐름인가싶다가도 과거부터 있어왔던 장르이기에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데도 무협과 결합해버렸다. 


지금도 강하게 믿고 있는데, 판타지나 무협이나 '서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건 일회성의 설정으로 끝날 계제가 아니고 오히려 설정만큼은 리얼리즘에 교묘히 덧입혀져서 '그럴듯한' 내용들과 내러티브로 무장하고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무협같은 '시대'에 들러붙어있는 역사적 두터음에 '탈시대적인 판타지'를 결합하게 되면 상상력의 깊이가 더 강해지고 중독적이 될거라는 추측에 신뢰감을 실어준다. 문제는 내용이다.  마법이 일어나고 독특한 아이템이 등장하며 이에 관한 흥미진진한 뒷배경이 등장할 때 '얼마나 몰입적인가'라는 평가가 남아있다. 그럴듯한 설정, 그리고 그럴듯한 세계관, 그리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모두의 이야기들이 과거부터 있어왔던 이야기라면, 혹 등장했던 캐릭터이고 무엇보다 관련된 에피소드가 프리퀼처럼 존재한다면 후대의 작가들은 이런 세계관을 그냥 사용만해도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례에 대한 출처, 깊은 독서경험에서 우러러나오는 '인용'과 '도입', 그리고 오마쥬의 즐거움을 누릴수가 있다. 적어도 생각이 있다면 무엇이든 펼쳐지는 세계관에 한해서는 한없는 상상력의 세계속에서 평행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니까.


로저 젤라즈니가 <고독한 시월의 밤>에서 사용한 세계관이 이와 비슷하다. 이름하여 '크툴루 세계관'(Cthulhu Mythos). 괴이하고도 기이한 신화적 설정이겠거니하겠지만 창작에 의한 세계관치고 유야무야 사라져버린 유치뽕짝의 다른 여타의 설정들을 뒤로하고 살아남는 설정에 대해서는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고독한 시월의 밤>(이하 고시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이자 개인 '스너프'는 주인과 어느 10월 기이한 게임에 돌입한다. 이 게임에는 다음과 같은 참가자들이 등장한다. 주인인 과 화자인 개 스너프, 미치광이 질과 고양이 그레이모크, 모리스와 메케이브 그리고 올빼미인 나이트윈드, 미친 수도사 라스토프와 검은뱀 퀵라임, 드루이드교 오웬과 다람쥐 치터. 백작과 박쥐 니들, 그리고 유일하게 혼자 다니는 래리텔벗, 그리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위대한 탐정', 마지막으로 '훌륭한 박사와 쥐 부보' 등이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정보와 재료들을 모아서 '그날'을 준비하고 동물들은 '정탐'으로 주인을 도우면서 둘이 한팀이 되어서 움직인다. 10월의 마지막날 게임 참여자들은 모여서 '개방'과 '폐쇄'에 대한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로저 젤라즈니의 마지막소설로 1993년 출간, 기존의 전작들과는 약간 달리 경쾌하면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비해선 훨씬 유하고 가볍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위트있으며, 고딕과 추리, 판타지의 결합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마치 이야기 구조만 보면 TYPEMOON페이트 스테이나이트(Fate/stay night)와 흡사한 구조다. 격돌을 전제로 생존게임을 벌이지만 각 참여자에 딸려있는 서번트와 <고시밤>에 서번트처럼 탐색전을 벌이는 동물들도 그렇고...아무튼 스토리의 설정구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롤플레잉 게임같은 느낌이 들기는한다. 로저 젤라즈니는 여기에다가 묘한 캐릭터의 유명세를 익살스럽게 연결시켰다. 이를테면 스너프의 주인인 '잭'은 <리퍼의 밤>(Night of the Ripper)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끌어왔고, 미치광이 질은 '마녀 질'(질드레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훌륭한 박사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박사', 백작은 '드라큘라 백작', '래리텔벗'은 '늑대인간', 위대한 탐정은 바로 '셜록홈즈'다. 어떻게 본다면 각종 유명한 캐릭터들이 은밀한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모두 총출동하는 이야기 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한참 모험담이 펼쳐지는 중간에 갑자기 고양이 그레이모크와 스너프가 이질적인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부분이다. 그레이모크는 이전에도 이러한 장소에 온 적이 있음을 말하며 그 세계를 '드림월드'라고 부르는데 드림월드에 대한 곳곳의 묘사를 아주 세밀하고 생생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앞서 이야기한 크툴루 세계관이 '고시밤'에 깔려있다고 보는 부분은 이것 때문이다. 특히 크툴루 세계관의 창시자로 알려진 러브 크래프트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러한 설정을 메인으로 확장할 의지같은 건 없었다고 알려져있긴 하지만 단편작들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인용도구로 사용하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해댔다. ( 이러한 패러렐적인 설정요소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용하는 측에서 변형을 가해도 무방하다고 한바 있다.)


 

젤라즈니 역시 크래프트의 크툴루 설정을 빌어온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우선 그레이모크가 묘사한 드림월드의 내용들은 소설 뒷편 역자 이수현씨가 밝힌대로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격'에 등장하는 '드림랜드'의 내용과 같다. 또 미친 수도사 라스토프의 무기로 등장하는 '알하즈레드'는 크래프트가 만들어낸 전설의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있다. 사람이름을 '성물'로 설정하는 위트를 발휘하긴 했지만 여전히 크툴루의 잔재가 깔려있는 것이다. (부. 1927년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라는 가상의 역사를 기록, 1938년 그의 사후 발표되었다. 책의 원제는 알아지프이며 아랍어로 '바람소리, 기괴한 소리 혹은 소음'을 의미한다. 이 책에 의하면 미친 아랍인 '알하즈레드'가 등장하고 그는 크툴루를 숭배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미친 수도사로 라스토프가 알하즈레드를 소유한다는 설정은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셈이다.)


의외로 로저젤라즈니의 이 소설속에는 여러가지 인문학적 요소와 고전 환상문학의 잔재가 깊에 자리잡고 있다. 더군다나 위트있는 대사들과 기발한 전개, 스펙타클한 모험으로 볼 때, 오히려 전작들의 미스테리하고도 무거운 전개보다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마치 정말 10월의 세계 어디에선가 이런 캐릭터들이 은밀히 활동하면서 지금도 '폐쇄와 '개방'을 위한 전력 대결을 펼칠 것만 같은.... 그래서 할로윈에는 고독한 시월의 밤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차라리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무협판타지여야 한다면 젤라즈니같은 서사를 배경으로 깔아놓는 정도의 위트와 흥미진진함이 있었으면 하다고 생각한다. 깊이있는 대사와 전개도 그렇고 환상문학의 가치를 이런것으로 갈음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는 도중에만 느끼는 긴장감만을 위해서 '책을 집어들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가끔가다가 굉장히 모호한 장르적인 뒤섞임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줄거리를 계속해서 읽는 고단함은 별로 느끼고 싶지 않다가도  '고독한 시월의 밤'을 떠올리면 정말 이 작품이 얼마나 좋은 작품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의 마지막 소설이 이 패턴으로 몇 권 더 나왔으면 좀더 긴 '시월의 밤'을 누려볼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있다.

 


고독한 시월의 밤

저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0-12-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고독한 시월의 마지막 밤, 게임이 시작된다!SF 판타지계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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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