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Pantry2014. 5. 21. 13:24

1.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이기도 했지만, 책을 읽었다고 해서 책안의 모든 내용을 다 기억 할 수 있는건 결코 아니라는 걸 다시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지인이 어떤 대목을 말하며 '그 부분을 난 이해할 수 없어 넌 어때'라고 불현듯 물을 때, 아 그래 그 대목 나도 이해가 안가..라고 말하면서 바로 맞장구 칠만큼 신속하게 기억에서 팝되었으면 좋겠는데 이건 그야말로 희망사항 일 뿐이다. 몇 초간의 탐색질 끝에 내 머리속에서 '띵'하고 경고 팝업이 뜨듯 슬며시 말한다. '기억에 없음..'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도 뭐라고 이야기해줘야 할 지 모르겠네' 라고 얼버무려 버렸다. 이건 책을 읽었다고, 그렇다고 안읽었다고 말하기도 뭣하다.


2.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생을 달리하셨다. 갑자기 검색어에 '백년동안의 고독'이 '삶의 고독'을 대표하듯 캐치프레이즈처럼 나부끼고, 블로그들에도 느닷없는 찬사와 추억 되새김질과 사후 찬미의 루틴한 호응이 벌어지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으면서 난 마술적 리얼리즘이 뭔지 감도 잡지 못했다. 그저 아르카디오의 피가 흘러흘러 층계를 지나 바닥 복도를 지나 대문을 지나 그리고 또 어쩌고 저쩌고 해서 드디어 죽음이 전달되는 과정을 읽고, 멜키아데스의 유체이탈된 삶도 읽고, 주전자가 끓어 뚜겅을 열어보니 구더기가 드글드글 하고 뭐 이런 비현실적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적으로 묘하는게 '마술적 리얼리즘'인가보다 했다. 어찌되었든 개인적으로 기억나는건 그냥 '백년'의 서사가 아니라 '고독'의 느낌이었드랬다. 아우렐리아노나 우르슬라나 아르카디오나 레메디오스나 레베카나 다들 외롭고 '고독'하며 쓸쓸하다는 느낌..마콘도가 그냥 처음의 부엔디아의 안중에서 에덴처럼 유지되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만 들곤 한다. 한번 다시 읽어볼까 고민 중이다. 


3.

알베르트 망구엘의 <책 읽는 사람들>을 드디어 2 챕터 정도만 남기고 다 읽어간다. 오랫동안 음미하듯 읽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한 단락도 이해가 잘 안되서 넘어가질 못하고 디제잉 판 튀기듯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단락을 와따리가따리 하셨다. 그런다고 해서 이해되지 않는게 갑자기 이해될 리는 만무하겠지만,  여러번 읽는 다는 건 뇌에게 '야 제대로 이해 좀 부탁해. 이건 중요한 거니까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거든' 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자꾸 자꾸 읽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는 셈이었다. 어쨋든 책을 사랑하는 망구엘의 열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가진 지적인 두께도 얼떨떨하시다. 가끔 이렇게 책을 폭식하듯 읽고 안에 담긴 영양분을 하나하나 낱낱히 분해해서 혈관에 녹인듯한 기인들을 보면서 '난 시간이 부족했을 따름이라고' 속으로 거짓말을 일삼을 뿐이다. 


4. 

카프카의 '소송'과 ''을 다시 읽으려고 한다. 어언 이게 오래전 일이 되버렸는데 그냥 이야기의 뼈대만 슬쩍 기억나고 뭐가 어떻게 된건지, 그리고 무슨 의미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패니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다 읽고 나면 '성'을 읽어봐야겠다. 내 예전 기억의 파편들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부숴져서 흩어져있는지 가늠할 수있는 좋은 기회겠지. 


5.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여러차례 읽었는데도 사실 '진의'와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알레프도 그래서 주저하고 있는거겠지. '칠일밤'도 밀려있고,.....휴...그런데도 비오이 케세레스의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과 '모렐의 발명'은 정말 재밌었다. 이건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칭찬하듯 보르헤스가 카사레스를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좀 재밌게 써줬으면 싶었는데 ...읽을 때마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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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