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4. 4. 29. 10:25

내가 이미 삐뚤어져있다고 가정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대중들은 현재 '지적인 허영'을 누리고는 싶지만 '책을 읽기는 싫은' 지경에 놓여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현학적인 자랑질과 책을 읽었다는 포만감과 무엇보다 지식의 두께와 감성의 찬란함을 작가로부터 빼앗고 책을 읽었다는 미션 클리어를 각자의 시그니처로 남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욕구는 넘치나 실제 책을 펼치고 장을 넘기며 행간에서 어떤 걸 느끼고 생각하고 감정의 유입과 뇌가 한여름 천정에 달린 환풍기처럼 가열찬 속도로 돌아가는 그런 과정을 소비하기엔 스스로가 너무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또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고..


이 고단함의 정체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미디어로부터 야기된 일종의 페이퍼에 대한 참을성 결여가 아닐까. 그런데도 팟캐스트의 '책소개'는 듣는다. 그리고 이 여파가 상당하다. 책방에서 한켠의 책들을 뺏다 꼽았다하면서 골라내는 수고따위는 어떤 비효율적 머저리들이나 하는 행위가 되고 미디어에서 소개해준 감칠맛나는 소감들로 책을 사러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속죄'는 대형서점에서 판매부수 급상승이라고하는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이동진씨와 김중혁씨가 이 여파를 두고 팟캐스트에서 부담스러워했지만, 뭐 좋은 책이 사장되는 불편함을 생각해볼 때, 이런 여파는 있어도 나쁘게 볼 이유는 없지 싶다. 다만 이렇게 해야 책을 선택하는 이 풍토가 '신세계'의 일면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읽는다는 건 좋은 일 아니겠는가. 아니 읽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좋은 일이다. 대중성에 협조를 구하고 마케팅으로 어줍잖은 퀄리티의 책들을 속이는 죄야 분통이 터지지만 이렇게 넘어가는 책이나 걸작이지만 쉽게 잊혀지고 독자들의 얕은 참을성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침몰해가는 대작들이 얼마나 많을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광고'와 '선전'과 미디어에서 앞다투어 꺼내놓는 이 기회를 버리라는 건 가혹하다. 팟캐스트는 게다가 어떤 점에서 '상업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약간 부담이 덜하기도 하다. 다만 이런건 있다. 팟캐스트던 뭐든 아무리 세상일에 치여산다고 해도 '책을 읽는 대신' 팟캐스트를 읽으며 '책을 읽은 것'처럼 생각하는 건 좀 그렇다. 어차피 팟캐스트도 '책을 소개하는 이유'가 읽으라는 거였으니까. 안 읽고 대담으로 책내용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내 견해로 치환하고 그렇게 정리하고 넘어가고 다른 책 이야기도 매주 해달라고 하고...왠지 편의주의적인 느낌이 막 든다. 


 아무튼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여파는 상당했다. 이언 매큐언<속죄>가 무료함의 두터움으로 독자들을 위협한지 꽤 시간이 되었음에도 이젠 다들 돌파하려고 서점으로 향했다. 이건 이동진 기자가 쌓은 '지적 욕구'의 상징성이 꽤 신뢰성이 있어서인가. 아니면 인간적인 매력때문에 소개하는 책도 믿고 보려는 대중들의 믿음때문인가. 그런데 약간 재밌는건 다른 경우였다면 <속죄>는 정말 지루한 서두를 벗어나기 어려운 딱딱한 작품이라서 <암스테르담>의 기민함이 없는 매큐언의 괴작이라고 불리웠을텐데 다들 아 이게 서두만 그렇다는 거지 이 부분만 참고 읽어나가면 뒤로는 엄청난 속도로 읽혀버리는 대목이 올거라는 당신들의 말을 믿어보지 라고 생각하게 된 독자들이다. 결국 독자들은 좋은 작품을 고르려고 서점에 가는 과정들이 죄다 빠진 채, 편하게 대리자에게 양도해버린다. 당신이 책을 소개해주고 골라만 준다면, 난 당신을 믿으니까 그 책을 사겠소...뭐 이런 것이다. 확률적으로 책선택의 실패확률이 줄어들 가능성이 큰 방법이다. 


독자들은 서점에 가서 골라서 살펴볼 여유보단 자신들이 믿는 범주안에서 누군가가 추천하고 그리고 유명매체에 등장하고 심지어 좋아하는 연예인이 언급한 책들을 사게된다. 어쩌면 책의 본연의 가치가 표지에 베어나와서 막 향기를 풍겨 서점전체를 진동하는 그런게 아닌 이상, 이런 마케팅내지 매체소개말고 대중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뾰족한 수도 별로 없긴 하다. 만약 이런걸 다 무시하고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볼 거라는 말을 출판사가 철썩같이 믿고 책을 내놓는다면, 싸늘한 새벽바람 못지 않은 무관심과 냉대속에서 관심의 수면위로 올라오지조차 못한 채 잊혀질 것이다.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볼 거라는 말이 맞긴 맞다. 다만 언제 알아볼 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감지하는 시간적인 기대치가 무한대에 가까울 만큼 랜덤이어서 밥벌어먹고사는 수익집단의 출판사들은 이런 한없는 기다림의 모험을 감수하기 두렵다. 언제 독자들의 '승인'과 '인정'이 떨어질지 알수 없다. 제기랄 아이돌 하나가 나와서 어느날 침대에 누워서 몇 시간내에 이 책을 다 읽었는데 기가막혔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좋을텐데..이런 상상을 하지 않는 기획자가 생기는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그런 세상이다. 

책도 이미지로 앞서 선행되어야지 의지의 영역으로 온다.

이 책도 사서 읽어야 겠어 라는 의지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지적인 허영을 누리곤 싶지만 책을 골라 읽기에는 너무 피곤한 세상인건 더 명확해진다. 난 고르는 것도 굉장히 재미난 일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대중들의 다른 관심사 RPM이 과열이다. 꾸페씨도 그렇고 '인문학 광풍'도 그렇고 '속죄'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대중들은 넋놓고 자신보다 안목이 뛰어난 누군가가 열렬히 책을 소개해주길 기다리고 기다린다. 팟캐스트가 없던 시절에 '책소개'는 시종일관 '지면'이었다. 지면을 안보는 독자에게 '지면소개'라니..활자를 읽기 지루해하는 대중들에게 찬란한 수식어구는 응답없는 외침같은 거다. 


TV에 등장했던 책낭독의 프로그램은 지면이 아니지만, '태도'의 위압감으로 사람들을 분류한다. 시청자들을 선별하고 채널을 고정시킬 만한 대상을 구획하시켜놓는다. 나같은 경우에는 이런 프로그램을 5분이상 보기 어렵다. 낯간지럽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젠채하고 너무 현학적인 ..짐짓 분위기있는 척하는 공기들이 부담스럽다. 역시나 글이나 쓰시고 지면에서 생각을 펴치셨어야 했어 저분은 너무 지적과 평가와 반응을 염두에 두신 나머지 언행에도 자신이 책과 가깝게 산다는 것을 드러내고 계시네 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건 다 허세나 허영이나 가식이나 뭐 그런 것들 아닐까. 차분한 목소리의 낭독으로 마음의 위안을 찾기야 하겠지만 정말 변태같은 책 미치광이들은 출현하지 않는다. 


차라리 김중혁과 이동민은 변태까진 아니어도 자기들끼리 낄낄거릴만큼의 책에관한한 위트가 있다. 위트도 아무나 하나. 읽어야 하는거고 자기생각이 있어야하는거지. 관객들 분위기잡고 공기는 숙연하고 음악은 잔잔히 깔리고 그 와중에 국어책 읽듯이 말하는 이 프로그램들이라니....팟캐스트가 편한 이유를 알겠다. 두고봐야겠지만 빨간책방 말고도 여럿 팟캐스트가 생겼다. 이분들의 전문성이야 왈가왈부할 만한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어색한 대중들과의 친밀성, 그리고 대화체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용은 인정해줄 수 있지만, 재미는 더럽게 없는 지루한 어떤 팟캐스트가 될 가능성도 농후한 것이다. 


책과 관련한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알아야한다. 너무 진지하고 너무 젠채하는 태도가 오히려 책을 대중들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는 ..게다가 히트는 매체의 특성과 미디어의 신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컨텐츠다. 내용이고 내용을 버무리는 독자적인 관점과 견해, 그리고 대중문화의 일면만을 들여다보지 않는 다양성의 견해들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의 딱딱한 팟캐스트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들을 수야 있겠지. 방송할수야 있다. 다만 그걸 듣는 사람들은 동기화가 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일 것이다. 적당히 지루하고 적당히 따분하고 적당히 재미 없는 그런 사람들일지 아니면 정말 대다수를 아우르는 책과 친숙해지려는 애청자들일지 두고 볼 필요가 있겠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