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스킨'같은 좁다란 노트에다가 뭘 그린다는 게 그리 익숙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리려면 차라리 커다란 스케치북이 제격이지. 화이트색 광활한 공간이야 말로 생각의 여유를 불러일으키고 시행착오의 실수들을 충분히 수정해 줄만큼 아량이 넘쳐보이는 존재감의 스케치북 말이다. 하지만 스케치북을 들고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카페에 앉아서 펼쳐놓고 그리고 싶은 걸 그리려면 굉장히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하고 ,몇가지의 번잡스러움을 버텨낼 줄 알아야 한다. 큰 백팩도 필수겠지? 


편의성의 시대의 그런 번잡함이라니..낙서를 해도 우리는 뭔가를 갖추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제대로 된 아이디어 수첩이자 적당한 사이즈의 스케치북을 대용할만한 무엇인가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몰스킨이 두둥 등장한다. 사실 몰스킨의 역사를 보노라면 녹록치 않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걸 알게된다.  이런 역사를 이미 알았다고 해도 그 역사의 진중함에 감탄하고 아 그렇구나 이런 유서깊은 사연들이 있었어 그럼 내가 써줘야 겠어 멋지게 그림을 그려주고 그래야지 라고 생각하진 못한다. 그렇게 있었나보다 정도지. 


실제로 몰스킨이 유명해지는 건, 몰스킨을 이용해서 자신의 그림을 아주 멋지게 그려내는 몇몇의 예술가들, 일러스트레이터들로부터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그럴듯하면서도 탐나는 어떤 컨텐츠'로서의 그림들이 아담한 사이즈로 예쁘고도 오밀조밀하게 그려져있는 몰스킨이라니...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마티아스의 스케치북>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주 좋은 몰스킨 스케치북 사용교본과도 같다. 


국내에도 몰스킨 사용성으로 이름을 날리신 '밥장'님이 계시긴 하지만 대개의 스케치 중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패턴들은 몰스킨적이다. 끊임없이 그리고 또 상상하고 재빨리 옮기고 색칠하고 열심히 스케치북의 종이를 넘긴다. 빼곡히 채워진 상상속의 이미지들과 오밀조밀한 생각들의 향연, 그리고 스쳐가는 영감들을 걷어올리는 잠자리채가 되어서 기록을 남긴다는 것. 그게 매력적인 것지 싶다. <마티아스의 스케치북>에는 이런 상상의 편린들이 이미지로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이 스케치북은 활자가 그윽한 책이라기 보단 화보에 가까운 편이지만 난 이 몰스킨스러운 디자인의 책을 펼쳐놓고 일러스트레이트를 오랜 시간동안 응시하면서 시간보내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  글자도 없어서 읽을 구절이 없는데도 그림들을 그저 바라 볼 뿐인데도...귀퉁이에 자리잡은 조그만한 시그니쳐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열심히 스캐닝한다. 


필체의 귀획과 연결부위의 마무리와 조그마한 사람들의 표정과 동네의 멋진 구도와 그로테스크한 패턴무늬, 디스토피아적인 환타지 요소들을 보면서 마티아스의 상상력을 쫓고, 그걸 이 스케치북에 옮겨온 걸 감탄하는 식이다. 물론 이 화보집을 읽고 나도 이렇게 해야지라든지 나도 그려보겠어라는 생각이 아니들 수는 없겠지만, 그것보다는 차라리 마티아스의 상상력이 실현되는 결과물로서 그림들을 보는 걸 더 즐긴다. 이렇게 해서 그의 머리속의 이미지들이 이렇게 간편한 형태로...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예술적으로 그려졌다는 것. 그런식으로 이렇게 한장한장이 채워진다는 것. 마티아스는 스스로 굉장히 뿌듯하고 풍요로움을 느낄지도 모른다고생각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이미지가 갑자기 머리속에 번득 떠오르고 슬며시 부유하며 소리소문 없이 색체가 희미해질 무렵, 우리는 뭔가 소중한 것이 지나갔음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망각의 공간으로 사라졌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마티아스의 이 스케치북이 주는 의미가 강렬하다. 




마티아스의 스케치북

저자
마티아스 아돌프슨 지음
출판사
한스미디어 | 2014-01-01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드로잉과 다시 사랑에 빠지다 마티아스는 뉴욕 타임스의 작업들과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