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4. 5. 23. 16:48


앙드레 지드<야간비행> 서평을 통해서 '리비에르의 숭고함'을 칭찬할 때, 이성과 정신의 강조를 통해서 작품이력을 넓혀온 앙드레 지드라면 냉혹하리만치 차갑고도 일관된 그리고 초인간적인 미덕을 가진 리비에르에게 마음을 빼앗기는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드랬다. 만약 야간비행이 '리비에르'의 이야기라면 여태 우리는 밤하늘에 고고하게 자신만의 차원과 세계를 회복하고, 고독하기 짝이없는 조종사를 로망으로 결코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기엔 <야간비행>의 스토리가 너무 한가한 경치놀음으로 비추어질테니까....<야간비행>에서 결국 독자들이 기억하는 건 뭘까.    


비지니스 경영서적과 달성해야 할 인간적 정신력을 주제로 한 인문학의 세계에서라면 리비에르는 <야간비행>에서 온전하고도 확고한 '지휘자'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조종사가 파타고니아 어디에 처박히던, 혹은 천킬로미터의 폭풍 구름 융단 위에서 오도가도 못할지라도 여전히 조종사를 하늘로 올려보내야만 하는 강력한 의지의 소유자라니...반면, 이것을 숭고하게 바라보고 자기초월적 의지의 순수성을 본다고 경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마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리비에르는 완전한 덕목의 소유자였으리라. 단호하지만 갈등하고 괴로워하고 걱정하는데다가 겉으론 내색조차하지 않는 '상관'으로서 '야간비행'은 그저 뚫고 나가야할 목표이자 성과이기 때문이다. 난 그런데 리비에르의 강력한 카리스마앞에서도 동조의 시선조차 할애 하지 않고 있었다.


앙드레 지드의 서평을 읽으면서 동감하기 힘들었다는 건 이런 걸 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싶다. '우리가 보고 싶은게 의지의 순전힘으로 휙득할 수 있는 자기초월'이라고 하는 구절을 읽으며 속으로 누가 그런 걸 기대하고 야간비행과 남방 우편기를 본단 말인가라고 투덜대고 있었다. (물론 앙드레지드의 서평 정도면 굉장히 훌륭한 서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일반 독자는 야간 비행의 첫서두에 등장하는 몇 줄의 풍광 묘사을 따뜻하게 기억한다. '벌써 황금빛 석양속으로 구릉의 그림자가 짙어져 밭고랑을 지듯 펼쳐졌고 들판은 오래도록 스러지지 않을 빛으로 환하게 밝았다. 이 지방에서는 기울어가는 겨울에도 하얀 눈이 남아있듯 대지의 황금빛 저녁놀이 늦도록 불타올랐다'는 대목 말이다. 오히려 '야간비행'에서 이런 서정과 로망의 정서를 기대하고 기억하는 쪽일 것이다.  콘크리트같은 숭고한 의지를 기대하기보단 파비앵과 베르니스의 고독한 비행, 프로펠러 뒤로 펄럭이듯 사라져가는 마을과 항구와 산등성의 풍경들, 그리고 생을 정리하기도 부족한 황급한 순간들에서야 생각나버린 과거로부터이어진 회한들, 결국 묵묵히 "하강함, 구름속으로 들어감"을 무전치며 쓸쓸히 무전국 백지위에 유령같은 글자들이 찍힐 때, 마음 가득히 안타까움을 뭍고 조종사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신을 느낀다. 마치 '삶이란 풍경을 바라보고 음미하듯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슬쩍 비춰질때 리비에르의 존재감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밤은 어두운 연기처럼 피어올라 계곡을 매우고, 벌써 불을 밝혀 별자리처럼 반짝임으로 서로인사를 나누고 조종사도 거기에 화답하듯 손가락을 튕겨 날개등을 깜박인다. 이윽고 등대가 바다를 향해 불을 밝히듯 집들이 저마다 광대한 밤을 향해 자신의 별을 밝히자 대지는 반짝이는 호출신호가 점점히 박힌듯 펼쳐지는 가운데, 인간의 삶을 감싸는 모든 것이 이미 반짝이고 있었다.


비행기 날개의 강철 소골부분을 쓸어보며 오백마력엔진이 이 물체에 아주 부드러운 전류를 흐르게 하여 얼음처럼 차가운 강철을 벨벳처럼 부드러운 살로 변하게 했다던 파비행을 보면서 우리는 축복같은 비행의 헤택이 그를 더 감성스럽고  로망스럽게 만들었다고 믿게 된다. 이윽고 야간비행이 가져다 주는 마음속의 정경과 이미지가 온통 이러한 쓸쓸하지만 동화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탄식과 독백으로 마음속에 그려졌음을 인지한다. 야간비행의 추억은 이런 명문장들의 차지가 되버렸다. 독자들은 이 야간비행을 읽으면서 서서히 서정적이고도 운명적인 조종사 좌석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리라  다만  인생이 그렇듯 이런 로망뒤에는 숙명적인 갈등과 절망이 몸을 구기고 숨죽이고 있는 것을 불안하게나마 눈치채면서 설마라는 단어를 동시에 떠올리면서...





살다가보면 결국 파비앵의 폭풍을 나도 만나는구나라고 생각되어질 때가 있다. 이제는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생애의 마지막에서나 겪는 암흑같은 절망감,  별탈 없을 거라고 근거없이 믿고 살았어도 늘 이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는데 막상 닥치면 그냥 현실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러기 앞서  '죽음을 부르는 미끼처럼 반짝이는 별 몇개를 따라 비상' 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인거다. 그런데도 삶이란 묘해서 죽을 만큼 힘이들고 괴로우면 그것이 '한번 별을 따라 올라가면 더이상 내려올 수 없어서 별을 깨물며 머물게 된다'는 결말을  알면서도 삶의 조종간을 당기고 싶어진다. 나도 파비앵도  결국 죽음을 부르는 미끼같은 별을 따라 하늘로 쏫구친건 아닐까 . 이 잠시간의 평안함이 일생동안 마지막으로 주어진 찰나적 안락함이 아닐까.  


리비에르의 진심은 사람들의 진심과 별반 다를게 없다. 절망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 그저 아직 절망이 불행이..불운이 닥치지 않은 그 사람들의 입장인 것이다.  '우리는 영원하기를 바라는게 아니야. 행위와 사물이 갑자기 그 의미를 상실하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허가 나타나거든..' 다들 공허함이 두렵고 그 처지가 너무 운명적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고 미칠 것 같은 절박함이 바닥을 드러내게 되면 사람들은 냉혹한 현실의 룰을 하나씩 더 추가할 뿐이다. 엔진 1,900 회이상 회전금지.....삶에 딱히 해결책이 없으며 전진하는 힘만이 있을뿐이라고 결론지으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도 우리는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쓸쓸함이 감돌지만 운명에 순응하고 상처받지 않기위해 규칙과 룰에 집착하고 부속같고 영향력 없는 한 인간의 무력감이 지면 위에 덩그라니 남았을 뿐,


그에 비하면 <남방우편기>에서 기억나는건 단 하나 뿐이다. 주느비에브를 데리고 비오는 날 호텔을 전전하면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주인공 베르니스는 불행해진 과거연인 주느비에브를 다시 자신의 곁으로 데리고 올 생각을 한다.) 과거의 연인이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는 판타지스러운 로망이 있을지라도 결국에는 차가운 현실의 벽을 만나게 될거라는 대중적인 추측은 별로 어긋남이 없는 법이다. 그저 차가운 현실이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그런 전제 아래에서 한없은 풍경속을 날아가며 초월하려고하는 욕구같은 것들이 비행에 스며든 것 뿐이지.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 주위에 지속되는 현실이 필요하고, 부조리하다든가 부당하다는 건 그저 말뿐이고, 베르니스가 데려가 주느비에브는 더이상의 주느비에브가 아닐거라는 친구의 조언은 너무 통찰력이 있어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여기선 베르니스의 희망찬 독백이 더 어줍잖고 비현실적이더라도 '남방 우편기'스러웠는데 ...그러고보면 생텍쥐페리는 몽상가라기보단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의심스럽다. 


베르니스와 주느비에브를 보면 '정말 내가 꿈꾸었던 어떤 만남과 연인과 그리고 어떻게 일이 이렇게밖에 돌아갈수가 없는거지라고 푸념했던 불운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꼬여버린 '지금'을 만나면 연인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의심하고 '인연이 아니었음'을 떠올린다. '주느비에브, 이 밤이 이 비가 우리의 신뢰를 망치고 있는거야. 라고 읍조리며 불치병같은 현실을 의심했던 베르니스와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징그러울 만큼 흡사한 과거가 한번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대중들이 몇가지 가설을 진리처럼 믿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성숙되지 않은 시절의 사랑들은 다 '미완성'이 될 운명이라고..첫사랑은 이뤄질리 없고 그 사람은 떠날것이고 나는 훗날 더 단련이 되고서야 제대로 된 사랑을 만날 것이라고...   


'나의 여름은 덥고 짧고 우울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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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티엔 16시 45분 출발.

세네갈의 생루이 도착소식 없음.

자그 베르니스 프랑스기지 불시착 

이후 행방불명. 


풍경만으로 기억하기에는 너무 애절한 '남방 우편기'였지 아마.....


우리는 밤속으로 들어간다. 한개비의 담뱃불을 신호등 삼아..그러면 세계는 자신의 진짜 차원을 회복한다.'




야간 비행 남방 우편기

저자
생텍쥐페리 지음
출판사
웅진씽크빅 | 2008-09-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찬란하게 빛나는 밤의 구름바다 위를 헤매고 있지만 저 아래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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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