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4. 3. 19. 16:19

가끔 에밀리 브론테멜빌루이스캐롤의 책들을 유재하의 '그대 내품에'가 깔리던 서점 한 코너에서 한 두시간이고 쭈구리고 앉아서 읽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 내 플레이리스트에 유재하가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결국 그 까짓   에이헤브가 모비딕을 잡던말던, 앨리스가 토끼굴에서 보았던 오렌지 마멀레이드 단지가 비워져 있거나말거나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원래 고전이란 현실괴리적이고 우왕좌왕하거나 뻔하거나 너무 빈티지스럽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지루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시간은 많았고 호기심은 인내를 매몰차게 바람맞히던 시절이었지 아마도...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다시 그 책들을 다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분명 어딘가에는 나같은 놈이 있겠지만, 이런 회귀적인 취향이 청승맞아보여 어디서 책을 펼치지도 못하겠다. 에이헤브의 라스트를 읽고 빨간여왕의 치대는 대사를 이상한 나라에서 읽으며, 코퍼필드의 삶에 뼈마디가 쑤시는 착각도 일부러 읽으며 상기시킨다. 이것도 병이다. 다시 사춘기도 아닌데 왜 이럴까. 가끔은 고전 소설같은 험난함과 아이러니함이 현실에 이입되지 않기를 바라곤 한다. 소설속에서도 버티지 못했던 주인공인데 하물며 현실에서라면 너무나 괴로울테니까, 소설을 읽으면 단련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보다.


가끔 기도를 이런 막연한 두려움때문에 했던 것 같다. 소설속에서 일어났던 이 광폭한 장난같은 일들이 지금 내가 사는 세상에서도 일어날까봐..해일과 같은 걱정과 근심의 토네이도 속을 거닐며 ..이런게 진짜 삶이라고 말할건 없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비린내 물씬 풍기는 날 것같은 불쾌감이 있는 세상인데 햇빛 좀 비추고 따스한 봄바람이 분다고 해서 그게 비현실적이라고 말할것 까지는 없으니까...더 많은 행복감을 느끼기위해서라도 우연 같은 즐거움이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