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이 등장하면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것인가. 하루키를 읽는 것인가' 라는 칼럼을 본 적이 있다. 요지는 하루키 알고 보면 별로.. 문학적인 가치도 생각하는 것 이하로 변변치 않고 문학계에서는 수준낮게 여긴다라는 그런 이야기였드랬다. 컬럼 내용을 들여다보다보니 그렇기도 하겠다 싶었다. 어떻게 보자면 대중들은 하루키라는 브랜드를 선호하고 선택하는 측면이 없다고는 못할테니까. 


문학계에서 진득히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글을 써왔다는 많은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현대 스타일리즘에 묘한 단어적 색체감과 세련된 문화생활의 편린으로 포장한 하루키로부터 반감을 가지는게 어쩌면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심혈을 기울인 문장들과 이야기의 구조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독자들을 설득시킨다는 것도 마뜩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대중들은 각자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 읽는 것도 제각기다. 결국 이 모든 건 작가들의 받아야 할 몫이다. 어떤 작가들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고한 글쓰기를 계속 할테고 어떤 이들은 3류 소설같은 판타지 읍조리며 대중들의 구미를 어떻게 하면 만족시킬까 고민할 것이다. 그게 선과 악의 문제라곤 생각치 않는다. 옳고 그름의 영역도 물론 아니다. 다만 대중성에 의한 유행에 항변하는 정통주의자로서는 고깝지 않다는 문학계를 보면 그냥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책도 일종의 패션같은 것인가라고 생각이 들어버린다. 올리브그린의 치노바지에 폴로에서 블레이저코트, 그리고 구찌넥타이라도 메고 그리고 갈색 구두라도 신고 보란듯이 늦은 아침에 걸어나가 고즈넉한 카페에서 브런치라도 먹어야만 스타일이 살아주시는 일종의 라이프패턴이 되버렸을 수도 있다. 책을 읽는다 것도 시선의식, 그리고 동종평가. 세간의 이미지를 대체하는 퓨전 악세사리처럼 공감대100% 스타일을 연출해줘야만 그럴듯하다는 소리인가. 


점점 읽으면 읽을수록 잠잠히 욕구를 침잠시킨다는건 쉽지 않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공유와 공감요구가 스물스물 저녁나절 향긋한 음식냄새처럼 소리없이 의식을 지배한다. 근질근질하면서도 안절부절할 만큼..... 그런 확산이야말로 완벽한 '읽는 목적'에 부합하는 거다. 어떤 이에게는 이 모든게 자기의식의 과잉과도 같은 '자랑질'이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현실이 따라주지 못해 속에 갈무리한채 끙끙대고 있다. 고고하고도 멋진 캐슬의 안쪽 어디 고풍스럽고 엔틱스러운 의자에 앉아서 문장들의 향기에 취해서 자기만족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분들은 그렇게 살면 된다. 그게 뭐 어떻다고...


뭐 어찌되었든 최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나쁘지 않았다. 너무 허황되지도 않고 판타지스러울려나 싶다가도 현실적으로 매듭지워진게 약간 의외이긴 하지만...(양이 등장하지 않은 것만 해도 그게 어딘가..) 무라카미의 책들을 꽤나 읽었나보다. 하루키같은 걸 왜 읽어라고 친구들이 흰소리들을 해대지만...수긍이 가고 공감만 된다면 한편의 좋은 책으로는 족하다. 스콧피츠제럴드, 존 치버, 핀천, 챈들러..그리고 레이먼드 카버 같은 걸 굳이 읽으면서 수준있는 채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하루키책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분기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부득이 읽어야 할 순간이 되면 어떻게든 읽게 되겠지. 마음이 바쁜 와중에 한 권이라도 읽는게 어딘가. 나중에 리뷰라도 한자락 써봐야 겠다. 그나저나 날씨가 하루키를 읽기에 아주 그럴듯한 날씨다..^^

Posted by kewell